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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시비(詩碑)를 보며

작성자
altai
작성일
2015-10-20 06:18
조회
53
                                                  윤동주의 시비(詩碑)를 보며

유기남선교사

알타이선교회

 
얼마 전에 목사님들과 일본선교여행을 다녀왔다. 방문지에는 천년의 고도(古都) 교토도 포함되었다. 한국여행객들이 일본에서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그곳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교정에는 윤동주(1917-1945)의 시비(詩碑)가 있다. 간간이 내리는 보슬비를 맞으며 그의 서시를 읽을 때 마음이 뭉클하였다. 그는 그곳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며 틈틈이 시를 썼다. 그러나 1943년 7월 일본경찰에 검거되었다. 그리고 광복을 앞둔 1945년 2월에 28세 젊은 나이로 후쿠오카형무소(福岡刑務所)에서 생을 마쳤다. 윤동주는 어려서부터 교회장로였던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 책읽기를 좋아해 평양 숭실중학교와 연희전문학교를 나왔다. 그의 신앙과 삶이 녹아있는 시(詩) 두 편은 다음과 같다.

 

서 시(序 詩)

윤동주 지음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 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십자가 (十字架)

윤동주 지음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敎會堂) 꼭대기

십자가(十字架)에 걸리었습니다

첨탑(尖塔)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鐘)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왔던 사나이

행복(幸福)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十字架)가 허락(許諾)된다면

목아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첫 번째 ‘서시(序詩)’의 경우는 1968년에 연세대학교 교정에 그의 시비(詩碑)로 세워졌다. 그리고 1995년 2월 일본 도시샤대학 캠퍼스에도 일본어와 한글로 된 시비(詩碑)가 동문들의 성금으로 세워지게 되었다.

이방 땅 감옥에서 28세에 죽은 윤동주를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구한말인 1866년 9월 성경을 갖고 들어오다 순교당한 토마스선교사(1840-1866)이다. 당시 그의 나이는 27세였다. 그는 런던대학을 졸업하고 24세 되던 해인 1863년에 목사안수를 받았다. 그리고 그 해 8월 런던선교회의 파송으로 갓 결혼한 캐롤라인과 더불어 중국 상해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일년도 채 되지 않아 병으로 죽고 만다. 홀로 남게 된 토마스선교사는 당시 쇄국정책으로 빗장 문을 굳게 잠그고, 카톨릭신자들을 핍박하던 대원군 집권 시기에 조선을 향해 들어오다 대동강변에서 처형을 당했던 것이다.

이들처럼 20대에 복음을 위해 주님의 품에 안긴 이들을 생각할 때 마다, 이미 시니어가 된 나는 늘 깊은 도전과 감회에 젖곤 한다. 앞으로의 모든 날들을 전부 주님께 드린들 무엇이 아깝고 미련이 남을 것인가.

복음을 들고 열방으로..세계를 품고 주의 영광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