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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덴티티 : 예수 안에 있는 자

작성자
알타이선교회
작성일
2017-03-13 04:04
조회
16
모세는 어릴 때부터 이집트 공주의 아들로 왕궁에서 자랐지만 그는 ‘정체성’과 관련한 갈등을 겪는다. 비록 몸은 이집트 왕궁을 거닐고 있지만 자신은 이집트 사람이 아님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결국 모세는 정체성과 관련한 갈등을 이겨내는데, 그 부분을 히브리서 11장에서 이렇게 소개한다.

믿음으로 모세는, 어른이 되었을 때에, 바로 왕의 공주의 아들이라 불리기를 거절하였습니다. 오히려 그는 잠시 죄의 향락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학대받는 길을 택하였습니다(히 11:24,25, 새번역)

갈등 끝에 정확한 자기 정체성을 깨닫고 올바른 길을 선택했던 모세가 훗날 자기 민족을 위하여 얼마나 큰 역할을 감당했는지는 다 알 것이다.

지금 이 세상은 혼미하다. 정치는 말할 것도 없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이 다 혼란스럽다. 믿는 자로서 이런 혼미한 상황을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해야 할지 갈팡질팡하는 현실이다.

믿는 우리가 현실 속에서 이렇게 혼란스러워하는 것은 그만큼 그동안 세상의 잘못된 가치관과 정체성에 노출되어 있었다는 가슴 아픈 증거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그렇기에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자기 정체성’이 무엇인지 정확히 배워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 받고 성령으로 인 치심을 받았다’는 성경적인 ‘자기 정체성’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 이 혼미한 세상에서도 흔들림 없는 ‘중심’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엡 1:13,14)
여기서 ‘인 친다’는 것은 소유를 확정하는 행위이다. 고대사회에서 주인은 소유한 가축이나 노예에게 불에 달군 쇠도장으로 인을 쳤는데, 그것은 ‘이것은 내 소유다’라는 것을 확정하는 행위였다. 따라서 우리가 성령의 인 치심을 받았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보증’이란 단어는 헬라어로 ‘아라본’인데, 이는 주로 상업적인 영역에서 사용되는 용어이다. ‘아라본’을 요즘 우리 식으로 쉽게 설명하자면 ‘계약금’이다.

성령님이 무엇을 보증해주신다는 것인가? 기업을 보증해주신다. ‘기업’이란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누리게 될 모든 축복을 의미한다. 성령께서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신다는 것은, 장차 우리가 누리게 될 영광스런 하나님의 약속들이 가짜가 아니라 실제로 이루어질 일임을 보증해주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어렵고 힘든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 영광의 풍성함을 미리 맛보게 해주신다는 것이다. 그 영광스러운 약속들이 성취되어가는 것을 누리도록 도와주신다는 것이다.

우리가 곧 집을 살 예정이라고 생각해보자. 단칸방에서 시작하여 악바리같이 돈을 아끼고 저축해서 작은 아파트를 장만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계약서를 작성하고 계약금을 보냈다.

계약을 하고 계약서를 받아와도 아직까지는 내 집이 아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생기는가? 벌써 내 집인 것 같은 희망이 생긴다. 그때부터 벌써 머릿속으로 집의 구조를 따져가면서 가구는 어떻게 넣고, 이 방은 아이들 주고, 저 방은 어떻게 쓰면 좋겠다면서 집 꾸미기에 여념이 없다.

중도금을 치르고 잔금까지 치러야 완전히 내 집이 되는 것이지만 마음에 소망이 생기는 것이다. 그 집에 대한 희망이 있으니 이미 그 집은 내 집이나 다름없다. 성령님이 이 역할을 해주시는 것이다.

눈으로 보면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인생이지만 성령께서 친히 아라본, 즉 계약금 역할을 행해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도 날마다 소망을 가지고 천국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믿음의 반대말을 ‘불신앙’으로 볼 수도 있지만 ‘절망’으로 정의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단테의 《신곡》에 보면 지옥의 문패에 이런 문구가 있다고 한다. ‘이제부터 이곳에 들어오는 사람은 모든 소망을 버릴지어다.’ 다른 데가 지옥이 아니다. 모든 소망을 빼앗긴 상태가 지옥이다. 즉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벌써 지옥을 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롬 8:24)

아직은 보이는 게 없다. 죽어봐야 천국이 있는지 없는지 알지, 지금 어떻게 알겠는가? 궁금하다고 죽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성령님이 보증금 역할을 해주심으로 우리가 천국을 당겨서 이 땅에서 미리 맛본다는 것이다. 희망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어렵고 절망적인 상황이 찾아와도 ‘왜 이래? 내 안에는 아라본 되시는 성령님이 계셔! 나는 하나님의 자녀야! 나는 이제 천국을 소유하게 된 사람이야!’ 하는 소망을 갖게 되는 것이다.

나는 우리가 기왕 신앙생활을 하는데 막연하고 뜬구름 잡는 것 같은 신앙생활, 죽어야 효력이 나타나는 신앙생활 말고, 오늘 바로 이 시간에 ‘아라본’ 되시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이미 보증금을 치러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이 땅에서 천국을 미리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아이덴티티 : 예수 안에 있는 자 /이찬수 저

 

복음을 들고 열방으로..세계를 품고 주의 영광을 위해..